뿌리를 적시고 생명을 싹 틔우는 물길 되어

2018 SPRING Special Theme 풀 위의 이슬처럼
테마 인터뷰

가슴으로 낳은 10남매와 천국 가정의 표본을 그리다
강릉아산병원 김상훈 원목, 윤정희 사모
뿌리를 적시고 생명을 싹 틔우는 물길 되어

식탁을 돌봐주는 따뜻한 손길이 있어 10남매는 날 저물어가는 저녁, 거리를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 하교 길, 아동센터에 살고 있는 것을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동센터 주변을 한 시간씩 돌던 다니엘은 이제 언제든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있었기에 운동회와 학예회는 10남매에게 큰 기다림이 되었다.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친구들 모두 있는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해도, 영어·수학 학원을 맘껏 다닐 수 없어도 품을 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여주는 손길이 있어서 10남매는 오늘도 가슴에 넓고 푸른 우주를 담는다. 그리고 더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딸아, 생각은 오히려 너의 영혼을 망치게 한다. 나를 믿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의 음성이라고 믿고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난 깊게 생각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 윤정희 사모의 두 번째 저서 『하나님 알라뷰』중에서 –

글 전영의 기자

김상훈 원목이 사역하고 있는 강릉아산병원 원목실. 명품 티셔츠를 입었던 시절보다 오천 원짜리 티셔츠를 입었지만 10남매의 부모로서의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두 사람은 말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10남매

이제 스물두 살, 스물한 살이 된 하은이와 하선이는 김상훈 원목과 윤정희 사모의 입양한 맏딸과 둘째 딸이지만 실제로도 친자매이다. 세 번의 유산을 겪은 후 두 사람은 입양기관에서 네 살 하은이를 만났다. 거기서 하은이의 한 살 어린 동생 하선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자매를 떨어져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둘을 동시에 입양했다. 이때는 10남매의 부모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순열로 입술이 갈라져 있던 하민이, 파양의 아픔을 한 번 겪은 데다 지적장애, 퇴행성 발달장애, ADHD를 앓고 있던 요한이, 안짱다리로 태어나 엉금엉금 기어서 부부에게로 온 사랑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렀던 햇살이, 일곱째 다니엘, 퇴행성 발달 장애에 IQ 67이었던 한결이, ‘주님 앞에 하나가 되어서 주님을 높여 드리자’라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어 준 하나, 생후 8개월의 어린 행복이를 가슴에 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맏이 하은이가 스물두 살, 막내 행복이가 일곱 살이 되었다고 한다.

크고 작은 아픔을 가진 10남매와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8개월이어서 힘들고, 아홉 살이어서 덜 힘든 것이 아니라 10남매가 자기 분량의 아픔을 치유하기까지는 진통이 따랐다.

신장 하나씩 기증한 김상훈 원목과 윤정희 사모

폐쇄성모세기관지염을 진단받고 사경을 헤매던 하선이가 건강을 찾자 윤정희 사모는 서원대로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하선이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김상훈 원목과 윤정희 사모는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에게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안짱다리로 태어나 4살임에도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던 사랑이를 입양기관에서 처음 봤을 때 윤정희 사모는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내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데 네 눈에는 왜 아이가 자꾸 아픈 것으로 보이느냐? 이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고, 정상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끊임없이 마음을 두드렸다. 사랑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온 윤정희 사모는 사랑이 발에 신겨져 있는 보조 신발을 벗기고 “넌 걸을 수 있어, 넌 뛸 수 있어!”라고 되뇌면서 손을 잡고 걷는 연습을 꾸준히 시켰다. 일곱 살 때 두 발로 뛰어와 부부에게 안긴 사랑이는 쇼트트랙 강원도 대표선수가 되어 빙상 위를 질주하며 수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선이도 건강을 찾고, 사랑이도 뛰어다니고, 요한이도 많이 건강해지자 삶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이렇게 감사한데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는 거예요. 더 드리고 싶은데 드릴게 없네요.”라고 윤정희 사모가 말하자
“내 거라도 원하신다면 드려야지” 하며 김상훈 원목도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그 후 김상훈 원목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병원 사역을 꿈꾸게 되었고, 강릉아산병원에서 힘들고 아픈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생명과 희망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왼쪽부터 세째 하민이, 둘째 하선이, 첫째 하은이가 지난해 가족 여행을 간 제주도에서 행복했던 시간을 사진에 남겼다
왼쪽 아랫 줄부터 사랑이, 다니엘, 한결이, 햇살이, 요한이. 아이들의 화사한 웃음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

10남매의 꿈

소외된 전 세계 어린이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맏딸 하은이의 꿈이다. 어렸을 때의 환경이 그 아이의 스무 살, 서른 살을 좌우한다고 확신하는 하은이는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5세, 6세, 7세 어린이들에게 하나님도 전하고 공부도 가르쳐 주는 교육 선교사가 되길 원한다. 캄보디아와 네팔로 교육 봉사를 다녀온 하은이는 좀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유아교육학과로 전공을 바꾸었다. 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하여 영어 실력도 업그레이드 시키며 아이들과의 만남을 설렘과 열정으로 준비하고 있다.

간호사가 되어 아빠처럼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도 들려주고 싶은 하선이, 운동 선교사를 꿈꾸는 카누 선수 하민이, 외교관 선교사가 되어 친부모의 나라 베트남에 가서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요한이, 아빠 같은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햇살이, 쇼트트랙 강원도 대표선수였고 지금은 축구부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다니엘과 한결이, 스케이트를 내려놓고 사격 선수로 활약 중인 사랑이, 아홉 살 하나와 일곱 살 행복이까지 저마다의 꿈으로 영글어가는 10남매의 뜨락은 생기발랄하다.

지구에서 가장 멋진 홈스쿨 선생님

하은이와 하선이는 검정고시를 통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하민이 또한 검정고시로 대학을 준비하고 있고, 과학과 수학을 거의 100점 맞는 과학고 지망생 요한이도 중학교 과정을 홈스쿨링 중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단 한 명의 선생님, 바로 10남매의 아빠 김상훈 원목이다.

건강이 안 좋아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도 있고, 또 아이가 원해서 홈스쿨링을 하기도 한다. 원목실 한편에 아이들의 책상이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상급 학교로 가는 꿈을 키운다. 과학고 지망생 요한이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끙끙거리며 두 시간 공부해야 겨우 수학 문제 두 개를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김상훈 원목의 얼굴에는 자녀와 책상을 마주한 아빠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물씬 묻어난다.

다니엘, 사랑이, 한결이가 쇼트트랙으로, 하민이가 수영과 카누 선수로 활약하면서 받은 메달들

대화가 한창일 때 원목실 문이 활짝 열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하민이, 사랑이, 햇살이, 요한이, 하나, 행복이! 윤정희 사모가 아이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사랑이가 오늘 사격 훈련에서 540점을 쐈다는 소식을 전한 아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540점은 회 당 평균 90점을 쏴야 나오는 점수라고 윤정희 사모가 설명해 준다.

나눔, 그 뜨거운 온도를 전하며

10남매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다. 1시간 40분짜리의 극영화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올 연말 한 방송국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하선이와 다니엘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실제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가족의 삶이 10분 정도 그대로 담겨지는 다큐 영화이다. 출연료로 받은 천만 원은 강릉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놓았다고 한다.

10남매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 낸 윤정희 사모의 저서. 삶의 뜨거운 온도를 전해주는 이 세 권의 인세는 기독교 방송국과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10남매와의 좌충우돌 생활을 윤정희 사모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하나님 알러뷰』, 『하나님 땡큐』라는 세 권의 책으로 그려냈다. 책에는 10남매가 아픔과 장애를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또 하나님과의 대화가 어느 베스트셀러도 줄 수 없는 뜨거운 온도를 전하고 있다.

큰 딸 하은이도 자신이 입양되어 하나님의 딸로 크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하나님의 딸』이란 책으로 담아냈는데 초판 4,000부의 인세 2,970,000원을 등록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다며 전액 내놓았다고 한다. 윤정희 사모가 자신의 저서 세 권의 인세를 모두 기부한 것처럼.

연탄 나르기, 반찬 배달 등의 봉사를 함께 하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나눔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

내려놓음과 던짐

하은이와 하선이를 입양할 때만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김상훈 원목과 윤정희 사모는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늘어갈 때마다 자신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을 해 주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아이들은 더 건강해졌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김상훈 원목과 윤정희 사모는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져라’라는 전도서 11장 1절의 말씀을 삶 깊숙이 품었다. 그리고 세상의 달콤한 떡은 물 위에 모두 던졌다. 내려놓으면 언젠가 또 번쩍 들어 올릴까 봐 찾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다시 찾을 수 없도록 흐르는 물 위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오롯이 10남매의 부모로서 20년을 왔다.

그 20년이 지나서야 전도서 11장 1절에 ‘여러 날 후에 다시 찾으리라’란 말씀이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져라’라는 말씀의 뒤를 바로 잇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 던진 물질, 명예, 소유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우주 최고의 멋진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명의 아이로 채워주셨어요.” 윤정희 사모는 말한다.
윤정희 사모가 ‘우주 최고의 멋진 남자’라고 표현하는 김상훈 원목에게 앞으로 또 입양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나 진행형”이라고 한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서로의 꽃으로, 세상의 꽃으로, 하나님의 꽃으로 향기롭게 핀 10남매와 김상훈 원목, 윤정희 사모. 이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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