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1달은 아프리카에서

행복한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며
1년 중 1달은 아프리카에서

글 김대원 집사

(2010 탄자니아 부코바초등학교에서)

아프리카와의 첫 만남은 14년 전입니다. 친한 자매 둘과 함께 『생명의 삶』이라는 묵상 집을 정기구독하고 있었는데, 말씀 묵상에 집중하던 두 자매와는 달리 제겐 ‘아프리카 단기선교사 모집’이라는 광고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매년 귀한 선물로 받는 365일을 아이들 속에 파묻혀 지내던 저는 직장 생활 12년 만에 첫 사직서를 쓰고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2004년 여름, 우리가 경험한 단기 선교 프로그램은 40일 동안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DR콩고 4개국에서 ‘어린이 대복음화 축제’를 진행하는 일이었으며, 광고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 약 300여 명의 청년이 모였습니다. 우리들은 일주일 동안 열 명씩 한 팀을 이뤄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오전엔 각 학교로 다니며 성경 학교 프로그램을, 오후에는 가가호호전도와 노방전도를, 밤에는 마을에 큰 스크린을 띄워 놓고 ‘예수’ 영화를 보여준 후 부흥회로 연결되는 뜨겁고도 뜨거운 한여름을 보냈습니다.

새마을 시범마을 마이막덴에서 운영된 청년 지도자 양성과정인 새망을 아카데미 학생들과 원로, 단원들과 함께
DR콩고 주변에 모여 살고 있으며 정부에서조차 배척하고 있는 피그미촌의 미래를 위한 간절한 기도

40일간 4개국에서의 단기 선교를 마친 후 한국의 일상 속으로 돌아온 제 가슴속에는 식빵 한 조각과 사탕수수 한 토막, 그리고 바나나 한 개가 대부분 날의 식사였던 배고픔의 때, 물이 부족하여 못 씻어서 땀 냄새가 쉰 냄새로 변했던 때, 어쩌다 물 한 병이라도 생기면 샤워도 머리도 감을 수 있어 감격했던 때, 도넛만 한 구멍의 재래식 화장실이라도 있어 안전하게 볼일 볼 수 있었던 때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하던 어느 날 주님께서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주셨고 1년 12개월 중 1개월은 아프리카에서 지내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첫 단기 선교를 떠났던 2004년과는 다르게 2005년에는 제 전공인 사회복지를 통한 복음 전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탄자니아 무완자라는 항구 도시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마리화나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별히 에이즈 감염이나 다양한 사연으로 부모님이 조기 사망한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자고 있으면 마리화나에 중독된 어른들이 성폭행을 하거나 인신매매를 하는 등의 큰 사회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해결하지 못하여 골치 아파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팀에게 거리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모아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고 현지인 중 믿음이 좋은 분들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치유하고, 아이들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사역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면 바로 유서 작성을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될 때를 대비하여 평소 소유물을 줄이려 노력하지요.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에서 지내는 동안 죽음과 만났던 경험이 있네요.

2006년 파주에 사는 덕분에 말라리아 예방약을 쉽게 준비해 갔었는데 현지에서는 마실 물이 부족해 약을 먹지 못했습니다. 저는 심한 고열과 통증으로 며칠을 고생하다 결국 정신을 놓았고 한밤중 우리 팀원들은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열악한 시골 병원에서는 피를 뽑고도 아침에 해가 떠야 햇빛으로 진단 할 수 있다고 하였던 우습지만 슬픈 현실이 기억납니다.

2009년 르완다 가이니초등학교에서 미술 수업
2004년 첫 아프리카. 르완다 피그미촌에서 만난 귀하고 어린 예수님의 손을 잡고

늘 자비량 선교사로 가던 아프리카 행을 2017년에는 코이카를 통해 민간 외교관인 봉사단 신분으로 에티오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청년 지도자 양성을 위해 예수님처럼 열두 명의 청년들을 모아 새마을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우리들이 떠나도 새마을 운동이 지속될 것에 초점을 맞췄었습니다. 온종일 돌을 깎아 손바닥에 지문이 없고 딱딱하게 굳어지도록 일을 해도 겨우 빵 몇 개를 살 돈을 버는 청년들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내일을 기대하고 꿈을 꾸는 청년들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이 마을 발전을 위해, 그리고 소득 증대를 위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던 모습들, 빵 몇 개를 덜 사고 묘목을 사서 심는 귀한 실천과 매주 수요일 새벽이면 마을 청소를 하고 일터로 향하던 귀한 땀방울이 떠오릅니다. 다행인 것은 그 시골 마을 청년들의 훌륭한 몸부림에 감동한 에티오피아의 명문 메켈레대학교에서 우리들의 사업을 인계받아 그 마을의 자립 과정을 돕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제 삶을 채우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 묵상을 통해 경험합니다. 성령님께서 앞으로도 제 삶을 시시때때로 간섭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저의 아프리카 행이 계속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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